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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우리 근현대사에 감춰졌던 비극이
전시되고 있는 현장을 소개합니다.
대부도와 맞닿은 선감도의 아픈 역사를 담은
선감역사박물관의 개관 특별전을
이제문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느닷없이 길거리에서 경찰에 의해
선감도로 끌려 온 10살 아이.

거리를 배회하는 부랑아로 보인다는 게
끌려온 이유 였습니다.

기술을 가르쳐 사회에
복귀시킨다는 목적으로 세워진 선감학원.

그러나 배고픔과 모진 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숙소에서는 관리인들의 매질과 인권유린이 계속됐습니다.

그렇게 10년 간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 소년은 20살이 되던 해,
공포의 학원에서 직원으로 일해야 했습니다.

더 이상의 인권유린은 없어야 했기에
원생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고
도망 칠 수 있게 돕기도 했습니다.

31살이 되던 해, 갑자기 학원이 폐쇄 됐습니다.

단 한번도 떠나지 않았던 선감도를 벗어나
새 삶을 시작했지만 그의 인생은 엉망이 됐습니다.

[전화인터뷰] 김춘근 (선감학원 생존자)
"막막하죠. 배운 것도 없고 뭐가 있어야 되는데 그냥 집사람이
나가자고 하니까 얼떨결에 나갔지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일본은 전쟁터에 보낼 소년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대부도와 맞닿아 있는 선감도에 선감학원을 세웠습니다.

일본이 패망하고 해방을 맞았지만
미군정은 선감학원을 오히려 대대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여기에 더해 1982년까지
거리의 소년들을 데려다가 교육한다는 목적으로
선감학원을 운영해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고아가 아니었습니다.
가난해 보였던 평범한 소년들은
영문도 모른채 끌여 와야 했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이
선감역사박물관에 고스란히 전시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흔적이 남아 있는 경기창작센터 뒷동산,
선감학원 그 자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인터뷰] 정기현 (경기창작센터 입주 작가)
"제일 중요한 것은 여기 마을 주민 입니다.
주민과 그 당시 기억을 어떻게 매칭하느냐,
작가들이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가 중요한 포인트 입니다.
어차피 주인은 주민들이니까 주민과 함께
운영해 나가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감학원을 탈출하려다 바다에 빠져 죽고,
관리인들에게 모진 매를 맞다 죽은 소년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많큼 많습니다.

그러나 그 역사는 은폐되고 숨겨지고 있습니다.

[전화인터뷰] 김춘근 (선감학원 생존자)
"우리는 경기도에 많이 요청하고 있는데 아직도
조사 중이고 해서 언제 그것이 끝이 날지 모르겠어요."

생존자들이 요구하고 있는 진상규명.
그 결과가 박물관에 전시되는 그날을 희망해봅니다.

티브로드 뉴스 이제문 입니다.

영상취재 : 최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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