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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1월 19일은 아동학대 예방의 날이죠.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통계를 보면
아동학대 가해자의 82.1%는 부모였고,
5.4%는 친인척이었습니다.

아동학대는 대체로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가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가 주도해서 아동을 학대했던
아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안산의 작은 섬, 선감도가 품고 있는 상처를
이제문 기자가 보도합니다.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인 안산시 대부도의 경기창작센터입니다.

이곳은 과거 어린이들이 피눈물을 흘렸던 아픔의 장소입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42년 4월.
일본은 선감도의 주민 대부분을 내쫓고 선감학원을 세웠습니다.

거리를 떠도는 8살에서 14살 사이의 소년들을 데려다가
교육을 시켜 건강한 사회인을 만든다는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어린이들에게 교육한 것은 천황에 대한 충성.

2차 세계대전 후반, 군인으로 키우려 했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아이들은 혹독한 노동과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강제 노역과 굶주림, 폭력에 시달렸던 아이들은
섬을 탈출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다 빠져 죽고
붙잡혀 맞아 죽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영혼을 달리기 위한 추모비가 세워진 것은
해방을 맞은 뒤 무려 69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

해방이 됐지만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이승만 정권은
선감학원을 계속 운영했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군은 전쟁고아를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선감학원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선감학원의 운영 실태는
일제 강점기나 해방 이후에나 변함이 없었습니다.

부모 잃은 고아를 데려다 보호한다는 목적과 달리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혜법 스님 /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
"저는 부모형제가 있었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 중에서 제가 있을 때
10분 중에서 7분은 전부다 부모가 있었습니다. 나가서 찾으신 분들도 있고..."

1982년이 되어서야 선감학원은 문을 닫았습니다.

선감학원의 운영을 맡았던 경기도의 조사 결과
해방 이후 수용됐던 어린이가 4천600여 명에 이르고
강제 노역과 성폭력 등 심각한 인권 침해가 확인됐습니다.

어린아이들의 강제 노동 수용소와 다름없었습니다.

선감학원에서 숨을 거둔 어린이들은
근처 야산에 아무렇게나 묻혔습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숨졌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선감학원은 사회 정화라는 미명 아래 자행된
대표적인 국가폭력 사건이라는 평가입니다.

[정진각 / 선감학원사건 피해자 신고센터 사무국장]
"가난을 없애겠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위정자들은
가난한 아이들만 거리에서 없앴습니다. 그래서 이곳 섬에 가두어서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강제노동을 가하고..."

지난해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선감학원과 관련한 피해 사실 등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약 200명이 피해를 신고 했습니다.

[이제문 기자 (ljm0509@sk.com)]
"피해자들은 입소 경위와 피해 조사를 통해
선감학원의 실체가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고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것.
피해자들의 바람입니다. B tv뉴스 이제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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