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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tv 인천뉴스 김지영 기자]

[기사내용]

박인애 앵커)
강화에는 한국 전쟁 당시 나라를 지키겠다며 발 벗고 나선 10대 청소년들이 있었는데요, 당시 1천여 명이 넘는 청소년 유격대원들은 제대로 된 무기도 없이 창과 몽둥이를 들고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김지영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참전 유공자들의 명단이 새겨진 추모비 앞에 선 어르신들.

한국전쟁 발발 당시
유부현 어르신은 17살의 청소년이었습니다.

1.4 후퇴로 하루아침에 38선을 내주고 철수했던 국군을 대신해
강화 땅을 지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청소년 유격대원 중 한 명 입니다.

[ 유부현 ㅣ 6.25참전 청소년유격대 기념사업회장 ]
"1.4후퇴 때 전부 관청이나 군부대 경찰이 다 후퇴하고 철수했기 때문에 강화를 지켜야 한다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특공대가 먼저 조직돼가지고 소년단을 조직해서 인민군하고 싸우자는 뜻에서… 같이 참여를 했습니다."

14세에서 19세 사이 청소년들로 구성된 유격대는
강화 향토방위 특공대와 함께 마을 단위 조직으로 활동했습니다.

정식 군인이 아니었기에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했지만
나라를 지키겠다는 마음 하나로 창과 몽둥이를 들고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 황우창 ㅣ 6.25참전 청소년유격대 기념사업회 ]
"인민군이 들어와서 삼산으로 피란갔다, 삼산에서 다시 특공대가 조직돼서 다시 들어왔다. 또 실패했다가 인천 앞에 지금은 시도지만 그때는 살섬이라고 했어요. 살섬으로 갔다가… 무방비 상태에서 그 강화 청년들이 남아서 애쓰고 그런거지 뭐 지금 얘기한다고 누가 알아주겠어."

당시 강화에서도 크고 작은 격전이 벌어졌는데
함께 유격대로 활동했던 동료의 죽음도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 유부현 ㅣ 6.25참전 청소년유격대 기념사업회장 ]
"강화초등학교 동창이 전사하고 죽은 거 그런게 지금 생각이 납니다.
박찬호라고 그때 같은 동갑이었어요. 강화읍 당산전투에서 전투하다 죽었습니다. 그런 생각 하면 우리가 산 게 참 신기하다 그런 생각도 나요."

강화 청소년 유격대원 가운데
현재 살아있는 대원 수는 6백여 명.

당시 소속도 군번도 없어 정부로부터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 심홍택 ㅣ 6.25 참전 청소년유격대 기념사업회 회원 ]
"그런 어려움을 겪고… 우리가 국가유공자로 지정된 게(김대중 정부 때) 이게 얼마 안 됐잖아요. 그래서 그나마 그래도 그렇게라도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살고 있는 거죠."

이제 대부분 흰머리가 희끗한 80세 노인이 된 청소년 유격대원들.

이들에게 국가가 지급하는 참전유공자 수당은 월 35만 원에 불과합니다.

Btv뉴스 김지영입니다.

[ 촬영 편집 : 이승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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